영혼의 뜨락
2022.11.30 16:02

하느님과 대화한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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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혜정 글라라 동화작가

나는 초보운전자다. 원래 운전을 좋아하지도 않고 할 생각도 없었는데 삼여 년 전 큰아이가 중학교로 진학하면서부터 운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운전의 공포증은 생각보다 심해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매일 아침 마른침을 삼키며 엄습해오는 불안, 초조, 긴장들과 맞닥뜨릴 때마다 정신을 부여잡아야 했다. 내가 하루에 운전하는 시간은 고작해야 모두 이십여 분이다. 그 짧은 시간들이 매일 조금씩 쌓이니 어느새 운전도 할 만한 것이 되었다. 정말 안 될 것 같았는데 참 신기한 일이다. 요즘도 나는 안전을 절대 신조로 삼으며 초심으로 간직한다.


9월의 말일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가톨릭문인회 연간지 원고 마감일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삼일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당선되고 처음 내는 원고인데 마감일 지나서 내면 막내 신참으로서 경우 없이 큰 실례가 될 것이고 자칫 문집에 못 실을 수도 있겠다 싶으니 마음이 급해졌다. 어찌 됐건 마감일 안에는 내야 했다.
다음날 아침, 운전을 하다 갑자기 마감일 생각이 스치자 심장이 둥둥거리며 조급함이 밀려왔다. 정지신호에도 안 걸리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순간 내가 왜 이러지 싶었다. 나도 모르게 하느님께 물었다.


“하느님, 제가 오늘 왜 이러죠?” 


하느님이 급한 원고 때문에 그러니 잠시 잊으라 하신다. 마음이 약간 가라앉는 것 같다. 평소에도 옆 차선의 출근 차량들의 속도는 으레 나보다 빠르다. 그날은 그것조차 신경 쓰였다.


“아, 옆 차선 차가 빨리 간다고 왜 저도 덩달아 빨리 가고 있을까요?”


하느님이 평상시대로 다른 차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대로 하라 하신다.


“네, 하느님.”


그리고 하느님은 심호흡을 한 번 하라 하신다. 하느님 말씀대로 하니 마음이 한결 진정되었다.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고 되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하느님과 계속 대화를 했다. 


“하느님 저 차가 차선을 바꾸려고 해요.”


하느님은 그 차를 주시하며 신경 쓰라 하신다. 내가 속도를 좀 늦추자 그 차가 차선을 바꾸었다. 


“휴우, 됐어요. 이렇게 하느님과 대화하면서 운전하니 훨씬 힘이 되는데요. 누가 옆에 있는 것 같아 든든해요. 근데 하느님은 이른 아침부터 시간이 많으신가 봐요? 계속 같이 있어주시네요.”


하느님은 항상 옆에 있었는데 몰랐냐 하시며 좀 서운해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언제 어디에 있어도 항상 곁에 있다고 하신다. 


“히힝, 감사해요. 그리고 제가 필요할 때만 하느님을 부르는 것 같아 죄송해요.”


하느님이 웃으신다. 나도 따라 웃는다. 이렇게 나는 하느님과 함께 안정된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밝은 아침이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하느님과 함께하는 운전 길에 따스한 햇살이 비친다. 


“하느님, 하느님이 곁에 계시니 제가 이렇게 살아요. 덕분입니다.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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