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2.11.24 13:19

따뜻한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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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연희 크리스티나 시인

가슴을 태우던 몇 개의 태풍이 지나갔다. 대기를 가득 채운 열기를 밀어내기 위함인가 가을은 그렇게 태풍 보낸 높고 빈 하늘로부터 시작된다. 이 계절엔 갈 곳과 볼 것 그리고 할 일이 너무 많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처럼 지나간 여름은 언제나 위대하다. 그러나 갈수록 기온은 높고 길어 상대적으로 짧은 가을은 아쉽다. 때로는 가슴 시리고 베일 것 같은 서늘한 공허함이 나이 듦에 외로움을 보탠다. 


성천상을 받은 ‘길 위의 천사’ 신문기사를 읽었다. 성천상은 창업자인 故 성천 이기석 선생의 생명 존중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십 년 전에 제정됨을 알게 되었다. 최영아(52세) 씨는 의예과 학생 때 비 오는 날 선배들을 따라 행려병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밥 봉사를 하러 갔을 때 길바닥에 주저앉아 빗물과 흙탕물이 섞인 밥을 퍼먹는 모습에서 심한 충격을 받았다. 십 년이 지난 후 내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여 심중에 담아두었던 곳으로, 본격적으로 낮은 곳 노숙인에게 서슴없이 다가갔다. 청량리 천사병원에서 유일하게 상주 의사로 밤낮없이 노숙자, 장애인, 알콜중독자, 외국인 근로자 등 환자들을 돌보다가 자신이 필요한 곳 요셉의원, 다가서기의원진료소, 도티기념병원 등을 찾아가 치료와 간호로 정성을 바쳤다. 물론 모교 교수직 제안도 거절하고 그들의 따뜻한 우산이 되어 한결같은 반평생을 보냈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 환자 수가 하루 백 명을 넘는 날도 있었다니 그 의사의 수고에 놀라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녀에게 유일한 인생 멘토는 끊임없이 솟아나는 사랑의 샘물인 쪽방촌 슈바이쳐 요셉의원 선우경식 원장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수도자처럼 헌신하는 것에 감명받았다고 한다. 


내가 시골의 보건진료소에 근무하던 시절에 영등포 요셉의원 선우경식 원장님을 수정 트라피스트 수녀님으로부터 소개를 받았다. 선한 눈빛에서 주님의 진정한 일꾼임을 알았기에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하며 마지막 날까지 존경심을 보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노숙인들이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모습에 보람을 걸고 실천하면서 자신은 이 선택된 삶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히려 사랑받고 있다고 하셨다. 겸손함에 가슴은 더 아려오고 찌릿하다. 놀라운 것은 어느 환자의 손 폰엔 달랑 의사의 번호 하나만 남겨있었다니 그 오랜 시간 동안 오로지 노숙자에게 쏟은 보살핌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가난한 이들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날까지 지지하고 지켜주는 성심이야말로 주님의 사랑 실천이 아니겠는가? 내 주위에도 일상에서 봉사 정신을 놓지 않고 묵묵히 실천하는 이가 많이 있다. 반면에 그저 비싼 의식주에 명품 가방. 액세서리 등을 추구하는 모습과 오직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 살아가는 듯 우아한 겉멋만 지향하는 태도를 보면 종종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나 역시 한통속이다. 티끌만 한 봉사를 하고는 은근히 자랑하지 않았는가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우리도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 실천이라는 최소한의 비를 막아주는 따뜻한 우산을 들고 온정의 친구가 되어 더욱 나눔의 정성을 쏟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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