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2.12.14 16:32

마부작침磨斧作針의 신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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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순화 베로니카 시인

차를 산 지 10년 동안 이상하게 좌측 미등만 계속 말썽이다. 이번에도 왼쪽 미등이 켜지지 않아서 퇴근길에 카센터에 들렀다. 미등을 교체하면서 좌측 미등만 3개월마다 자꾸 나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장님에게 물어보았다. 본인도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정비소에서 일하다 보면, 희한하게 고장 난 곳만 계속 고장이 나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했다. 


차 수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고장 난 곳에서 계속 고장이 나는 것이 비단 기계뿐이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돌아보면 나 역시 계속 탈이 나던 곳에서 다시 나의 나약함을 발견하곤 한다.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을 상대에게 성질을 부렸던 일, 내가 옳다는 자만심에 빠져 타인에게 함부로 말한 일, 헛된 욕망과 탐욕에 저지른 잘못들을 십자가 앞에서 수십 번 고해하지만, 또다시 같은 문제로 내 가슴을 친다. 


이런 나의 부족한 마음을 가다듬고자 올해 초부터 매일 미사를 봉헌하기로 결심했다. 확실히 매일 복음을 읽고 신부님의 강론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졌다. 그러나 희한하게 3개월에 한 번씩 침잠하는 시기가 왔다. 내성이 든 것인지 3개월 정도 지나면 다른 약속에 밀려서 미사에 종종 빠지기 일쑤였고, 다시 세속의 굴레에 따라 살아가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한동안 말씀이 스며들지 않는 내 삶은 푸석했고 어두웠고 울적했다.


그렇게 세상살이에 조금씩 지쳐갈 때쯤 내게 나지막이 들려온 주님의 말씀,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묵시 2,3-5)라는 말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사실 나는 10년 전쯤 주님께 나의 모든 죄를 고해하고 용서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굳게 다짐했었는데, 시간이 흘러 다시 삶이 평탄해지자 그때 받은 사랑을 잠시 잊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주님이 나를 살렸던 것처럼 마음 아픈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웃의 아픔을 진정으로 살피기보다는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만 한 것 같아서 부끄럽기만 하다. 


이제 다시금 가련한 나를 선택해 주셨던 당신의 깊은 사랑을 기억하며, 내가 추락한 지점부터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작침’의 신념으로, 앞으로 다시 닥쳐 올 세월의 풍화와 침식을 잘 견뎌내며 내 뭉뚝했던 마음이 당신을 향한 한줄기 빛으로 향할 때까지, 내 남은 생을 정성껏 살아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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