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3.04.20 10:53

아들과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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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백남오 시몬베드로 수필가

230423 영혼의뜨락 백그라운드이미지(홈피용).jpg

 

스페인은 유럽의 시작이자 종착점이다. 지중해와 닿아있고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와 접해 있다. 지구의 반대편에 해당하는 머나먼 곳이다. 12월 31일 오전 11시, 인천공항에서 13시간 이상이나 날아서 마드리드 공항에 내렸는데 그곳은 붉은 노을빛이 물들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대학시절 학보사에서 만난 <한솥모임>과 함께했다. 아내가 무릎 수술을 하여 먼 길을 떠날 수가 없어 아들 승일이가 대신하게 되었다. 참 다행이 아닌가 싶다. 


바르셀로나 인근의 몬세라트는 산세가 웅대 수려하고 베네딕투스 수도원이 있는 성지였다. 산 중턱 해발 7백 지점의 깎아지른 바위 사이에 지어진 이 수도원은 카탈루냐 사람들의 수호성인 검은 성모상이 모셔져 있었다. 성 루카가 만들고, 성 베드로가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아랍인들에게 강탈당할 것을 염려해 동굴 깊숙이 숨겨 두었는데, 8백30년이 지나서 이곳 목동들에게 빛과 함께 천상의 음악이 들리며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옮기려 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아 이곳에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수도원 대성당 제단 2층에 자리하고 있는 이 성모상은 오른손에 공을 들고 있으며, 공은 오픈되어 있었다. 이 치유와 기적의 마리아를 보기 위해 세계의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고 긴 행렬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230423 영혼의뜨락 이미지 몬테라토 성모상(홈피용).jpg


가이드는 설명을 끝내며 시간상 밑에서 바라만 보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재빨리 나의 손을 잡고 2층으로 이끌었다. 이미 성모상을 보기 위해 긴 줄이 끝도 없이 이어진 상태였다. 나는 놀라면서도 조용히 아들 뒤를 따랐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과연 성모상을 만져볼 수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시계만 바라볼 뿐이었다. “아부지,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 걱정 마시고 내 따라오이소. 시간은 충분합니다. 나는 기념품 가게에서 검은 성모상도 하나 살 겁니다.” 하며 여유까지 부리는 것이 아닌가. 그랬다. 승일이가 맞았다. 나는 그렇게 아들의 용기 덕분에 나무로 만들어진 검은 성모님을 친견하는 감격을 맞이했다.


내가 아들에게 바라는 소망이 크지는 않다. 평범한 세상 부모들의 기대와 다를 바 없다. 이 험한 세상에 슬기롭게 살아남아야 한다. 앞서가지는 못할망정 뒤처져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문화생활도 하며 사람답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웃의 아픔까지도 살필 수 있는 나눔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은 없다. 이게 전부다. 그 정도의 사람으로 키우기 위하여 어려서부터 그렇게 다그치며 온 힘을 다하여 전쟁이라도 치르듯이 교육을 시켜 온 것이다. 한때는 자식에 대한 욕망은 멈출 수도 없어 설령 고시에 합격했을지라도 그 이상의 것을 바랐을 것이다. 지금은 자동차 관련 조그만 사업장 하나 운영하고 있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폭풍우가 휘몰아쳤음은 물론이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연결해 낸 능력을 장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서정이, 성현이 아비가 되어준 것이 고맙다. 아들이 다하지 못한 것은 손자가 또 메워 갈 것이라 믿는다. 아들과 멋진 스페인 여행의 추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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