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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고양이는 부르지 않을 때 온다』는 송우혜의 단편소설이다. 신학과 출신의 작가답게 이 작품은 신앙의 의미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 작품은 거식증에 걸린 소녀에게 기도를 해 주겠다는 목사의 제안을 소녀가 조롱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기도가 거식증에 효험이 있다 해도 그래요. 우리 할머니 같은 분의 기도로도 안 된다면, 생전 처음 보는 목사님이 한마디 삐죽 기도해 준다고 해서 내 거식증에 대체 무슨 효험이 있겠어요. 우리 할머니가 어떤 분인 줄 아세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런 분이 드리는 기도조차 전혀 효험이 없단 이야기에요.


정민과 할머니는 평범하면서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고등학생이던 정민의 오빠가 동네 불량배에게 폭행을 당해 죽는다. 그들은 그 고통 속에서 ‘신앙’을 찾고 교회도 열심히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범인이 모범수로서 일찍 출옥하여 제과점도 차리고 결혼까지 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떡하든 기도를 통해 용서의 힘을 간구하던 그들은 결국 절망하고 만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심한 관절염을 앓게 되고 정민이는 거식증에 빠진다.


‘왜 하느님은 죄 없는 착한 아이를 죽게 하시고, 악인을 용서하시는지’ 정민이는 이해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할머니의 기도도 들어주지 않는데 목사가 ‘삐죽’ 해 주는 기도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목사는 이 문제에 대해 무력감을 느낀다. 번거롭고 난감한 일로 여기기까지 한다. 종교적 감성을 자극하는 그의 기도에 정민은 철저하게 냉소를 보낼 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민이 밥을 먹기 시작한다. 범인의 제과점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지른 이후부터이다. 범인은 심한 화상을 입고 정민은 구속되는데 그때부터 거식증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저 사랑과 용서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스스로 고통의 근원에 직접 다가감으로써 위로를 받은 것이다.


참된 신앙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목사는 한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거친 바다에 나가면 숙련된 해군 병사들도 심한 멀미를 한다. 그런데 배를 처음 타는 신병이 멀쩡할 때가 있는데 그런 병사들은 어릴 때부터 침대 생활을 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듯하지만 요지부동인 방바닥과 달리 침대에서는 몸이 흔들린다. 그런 흔들림에 익숙하면 멀미를 하지 않듯이 세상의 고통과 더불어 움직이는 게 진정한 신앙이 아닐까. 어쩌면 딱딱한 방바닥처럼 현실의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공허한 기도는 없었을까.


목사는 큰 설교를 앞두고 자신이 준비한 원고에 아무런 기쁨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동안의 성공 가도에 불안이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뜻하지 않게 다가와 지금까지 참된 신앙의 길을 걸었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 사나운 발톱으로부터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느끼듯이 목사는 아마 세상 속에 더 깊이 뛰어드는 신앙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하느님의 뜻으로만 돌릴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분노에까지 공감하면서 그 아픔을 위로할 것인가. 무엇이 참된 신앙의 길일까? 참 어려운 질문이다.

 

211017 8면 문학과신앙(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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