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1.11.04 13:18

조율

조회 수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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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유희선 가타리나 시인

티브이프로그램 ‘새가수’를 통해 ‘조율’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북유럽 감성을 입힌 아름답고 고운 선율이었다. 노랫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알고 있지 꽃들은 따뜻한 오월이면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철새들은 가을하늘 때가 되면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가는 곳 모르면서 그저 달리고만 있었던 거야/ 지고지순했던 우리네 마음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해 왔었는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 번 해 주세요

 

인간이 저지른 심각한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곡이었다. 엉망진창 만들어놓은 지구를 ‘하늘님’께 은근슬쩍 떠넘기고, 실상은 기적을 바라는 듯 보였다.


성경에서(마태 8,22-25)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던 위험천만한 상황이 오버랩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그런데도”라는 표현 하나만으로도 제자들 마음이 훤히 보인다. 그때 제자들은 자신들의 얕은 믿음에 대한 반성보다는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시키는 기적을 보고 더 놀라워했던 것 같다. 어쩌면 오늘날의 기도 속에서도 신은 늘 잠에서 깨어나지 않거나 기적을 행하는 모습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조율調律이라는 단어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조율은 피아노 건반의 모든 음을 제 고유의 표준음에 맞추는 일이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어떤 환경에서든 표준음으로부터 음 이탈은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지속적인 조율이 필요하다. 조율사는 어긋난 음을 고르며 정확한 음을 찾아가는 작업을 한다. 태생적인 본래의 것으로 되돌아가는 부단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노래 가사처럼 꽃들이 알고 있고, 철새들이 알고 있는 것들이다. 신이 우리 각자에게 심어준 씨앗이 무엇이었는지, 잠재된 소명을 꽃 피우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가 기적으로 직행하기 전까지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영혼의 변질 또한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주일을 지키는 하나의 절대적 형식 또한 인류가 지구상의 최상위의 종種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단 7일을 버티지 못하고 음 이탈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상상한 적 있었다. 그만큼 나약하고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거실에는 객지에 나간 딸의 피아노가 있다. 조율을 언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처럼 추억 삼아 치는 딸의 피아노 소리는 듣기 거북할 정도이다. 언젠가부터 성당에 나가지 않는 딸이나, 아무 강요도 하지 못하는 내 모습처럼 어정쩡하다. 피아노가 ‘있을 곳’도 더는 여기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물건도 사람도 제 소명을 다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부터 다시 시작이다. 한 음 한 음 정확한 조율을 넘어 조화와 기적이라는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211107 영혼의뜨락(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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