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1.10.28 11:35

마지막 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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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홍예성 바울라 수필가

반모임 카톡에 부음이 올라왔다. 지병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던 형제님의 장례미사 안내문이었다. 친정 부모님과 레지오 활동을 함께했던 분이다. 이 레지오는 공소가 없는 지역에서 군내버스로 성당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어르신들과 본당 어르신들을 위해 22년 전에 조직되어 주일미사가 끝나면 회합을 하였다. 친정 부모님도 나이 비슷한 단원들과 여유롭게 하는 주 회합에서 함께 어울리며 흐뭇해했다. 이 레지오 단원들이 야외행사를 하면 본당 신부님은 따뜻한 차를 준비해 가서 격려하기도 하였다. 본당 30년사를 펼쳐 레지오단원들 사진을 찾아보았다. 20여 년의 세월을 짚어보니 정정하신 친정 부모님과 활짝 웃고 있는 단원들을 뵐 수 있어 기뻤다. 하지만 아홉 분 중에 친정어머니와 동네 자매님 두 분만 생존해 있고 일곱 분은 선종하였으니 세월을 비켜갈 수 없어 영원한 안식을 비는 화살기도를 드렸다. 


오늘 선종한 형제님은 지병으로 목소리를 잃었지만 언제나 온화한 미소로 단원들과 함께했다. 그런 그분이 본당 50주년 기념행사로 소장품 경매를 할 때, 신부님이 기부한 작은 종을 두고 자매님 한 분과 끝까지 각축전을 폈다. 점차 경매 가격이 올라가도 형제님은 굳건히 버텼다. 빙그레 웃으면서. 결국은 신부님이 종을 하나 더 사서 자매에게 주기로 하고 종은 이분에게 전달되었다. 아내를 부를 때 종을 울리려고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그 자매는 죄송함을 감추지 못했다.


6.25전쟁 참전 용사이었던 형제님은 태극기를 관포로 하여 주님 대전에 마지막 입당을 하였다. 신부님은 병자성사 때 세상 것을 모두 내려놓고 하느님께로 향하는 겸허함을 그분의 눈빛으로 읽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미사해설을 맡았던 나는 보편지향기도를 드릴 때 선종한 친정아버지와 그분이 겹쳐지면서 격하게 마음이 일렁거렸지만 성전의 거룩함으로 마음이 가다듬어져 기도를 이어갈 수 있었다.


교회의 전통대로 행하는 고별식은 코로나로 거리두기 2단계이어서 고별성가를 부를 수 없어 크게 아쉬웠다. 조용히 울리는 오르간 반주에 맞춰 “하늘의 성인들이여 오소서. 주님의 천사들이여 마주 오소서. …… 이 교우를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앞에 바치소서.”를 떨리는 목소리로 형제님의 인자한 미소를 그리움과 함께 올려 보냈다. 


파견성가도 없이 주님 대전을 떠나가는 그분을 신부님과 교우들이 미동도 않고 눈빛으로 배웅하는 모습에 또 한 번 울컥하였다. 이제 이 세상에서 걷던 사랑의 길을 끝내고 한 모롱이를 돌아 하느님나라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분을 지켜보는 본당 식구들의 모습이 오랜 시간 가슴에 따스함으로 남으리라. 이 장엄함은 코로나가 가르치는 숙연한 침묵으로 아름다웠다. ‘천사들이여, 이 교우를 천상낙원으로 데려가소서. 순교자들이여, 이 교우를 맞아들여 거룩한 도성 천상예루살렘으로 이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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