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칼럼
2021.10.14 13:18

가톨릭 전통과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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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민아 마리아 교수/ 조지타운대학교

요즈음 소셜미디어에 부쩍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전통에 근거한 신앙을 강조하는 콘텐츠들이 많이 눈에 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가져온 불안함과 위기 속에서 신앙의 의미를 묻고, 신자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글과 영상들을 공유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많은 내용들이 근현대의 인문학과 신학의 흐름은 물론 교회의 전통에 대해서도 다소 협소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되기도 한다.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에 대한 시각이 특히 그렇다. 이런 콘텐츠들에 영향을 받은 많은 신자들이 페미니즘을 ‘이데올로기’라 단정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배척하는 것으로 판단해 멀리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 대학교에서 가르치지만, 여성신학을 교과과정의 중요한 축으로 삼는 나는 종종 신자로서의 정체성, 또 가톨릭 대학교의 교수로서의 의무와 여성신학의 가르침이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는지 질문을 받고는 한다. 내 대답은 “갈등은 당연한 것이고, 그 갈등 속에서 창조적인 긴장(creative tension)을 찾는다”는 것이다. 갈등과 의심은 신앙의 적이 아니라 신앙의 일부다.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마르 9,24)라고 청했을 때 예수는 기꺼이 자비의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는가. 갈등과 의심이 없는 신앙은 넓고 깊게 삶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독선과 아집이 되기 쉽다. 질문하고 고민하는 신앙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휘청거리지만 쉬이 꺾이거나 뿌리째 뽑히지 않는다. 


출산과 낙태, 결혼, 이혼, 여성사제 등 민감한 사안들에 있어 가톨릭교회와 페미니즘은 확실히 갈등을 일으킨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와 페미니즘의 갈등은 이거냐 저거냐 선택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보다, 그 갈등을 통해 성찰과 진전을 추구할 수 있는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페미니즘은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단순히 “여성의 권리를 남성의 것과 수치적으로 동등하게” 만들거나, “남성 중심의 사회를 전복 시키려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입장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위한 운동”이라기 보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운동이다.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삶의 기본적 조건, 즉 인간이 태어나 죽기까지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다른 이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양식을 성별에 치우침 없이 만들고자 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교회의 가르침을 거부하거나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경험이 삭제되어 있는 교회의 전통과 여성의 의사결정권이 배제되어 있는 교회의 구조에 창조적 긴장을 일으키는 질문으로, 교회의 완덕을 추구하기 위한 건강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가톨릭 신앙과 페미니즘을 선택의 문제로 보는 이들은 교회가 이제껏 유지하고 발전시켜 온 전통의 의미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제2바티칸 공의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이브 콩가르Yves Congar 추기경은 전통을 보수주의를 넘어선 ‘연속성’이자, 나아가 교회의 역사를 관통하여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운동과 진전’이라 정의한다. 추기경의 글을 인용하자면, “전통은 교회가 수 세기를 통해 고양시켜 온 긍정적인 가치를 포함하고 보존하지만, 이는 단순히 과거를 반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전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은 기억이다. 기억은 우리의 경험을 풍요롭게 한다.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를 반복하며 노예처럼 묶여 있을 때 또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진정한 전통은 복종이 아니라 신실함이다.”(이브 콩가르, [전통의 의미] 서문 중에서) 즉, 전통은 단순한 보수주의나 교리를 보존하고 수호하는 틀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획득한 긍정적인 가치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유기적 통로라는 말이다. 


따라서 전통을 이해하는데 출발점이 되는 것은 과거의 유산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 우리 시대의 상황이다. 또한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은 복음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단순히 보존하고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해당 시대의 언어로 번역하고 삶으로 살아 내는 것이다. 오로지 시대와의 대화와 조응을 통해서만, 전통은 살아 있는 영향력으로서 신자들의 삶 속에 파고들 수 있다. 예수가 유대교의 가르침을 창조적으로 해석하여 복음을 선포했던 것처럼, 사도들이 유대교와의 긴장을 유지하며 그리스 로마 문화를 탄력적으로 적용하여 복음을 전파했던 것처럼 말이다. 가톨릭교회는 신앙을 기반으로 전통과 상황을 탄력적으로 조명하고 성찰하는 가운데 성장해 왔다. 복음의 메시지와 교회의 가르침이 시대와 삶과 신앙에 역동적으로 관계하기를 그칠 때 발생하는 것이 ‘전통주의’라는 퇴행적 가치다. 옛 가치에 대한 보존과 반복만이 최선이라 믿고, 질문하거나 대화하지 않는 ‘전통주의’는 교회가 이천년 가까이 계승해 온 전통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신학은 가톨릭 전통과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가톨릭 여성신학은 교회의 역사에서 사라진 여성의 역사를 복원하고, 교회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제거된 여성의 목소리를 살려 내어, 반쪽짜리 전통으로 이제껏 유지해 온 교회의 전통을 온전한 전통으로, 온전한 삶의 전승으로 재건하는 신학이다. 여성신학은 예수의 복음이 남녀 모두에게 선포된 해방의 복음이었으며, 남성들뿐 아니라 여성들의 삶과 신앙이 없이는 복음의 전승이 불가능했으리라는, 그리고 앞으로도 불가능하리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전통은 여성신학의 걸림돌이 아니라 비옥한 토양이며, 여성신학은 전통을 거부하는 이념이 아니라, 전통과 시대가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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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기쁨을 사도들에게 전하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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