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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론 이진수 스테파노 신부

영원한 생명 vs 영원한 젊음

 

오늘 지내는 ‘조부모와 노인의 날’은 초고령화가 진행 중인 서부 경남 지역 신자들에게는 ‘교구의 날’ 내지는 ‘본당의 날’과 거의 동격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살아있네!” 어느 영화 중 건달 역할의 배우가 내뱉은 말이다. 신학적으로는 우선 부활하신 주님께 적용될 말이 여기서는 그저 ‘싱싱하고 탱글탱글한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 “살아있는 자들의 하느님”(마태 22,32ㄴ)께서 ‘쭈글쭈글 늙은이들’의 하느님도 되시는가? 육체는 ‘감옥’인가 아니면 영원한 젊음의 표상인가? 늙음은 젊음을 전제로 하는가? 젊음과는 어떤 관계에 서 있는가?


성경 내 ‘늙음 속에 젊음을 간직한’ 제일 대표적 인물이 아브라함이다. 팔십이 되어서야 백성을 구하라는 하느님 부르심을 받은 모세(탈출 7,7)를 제외하고는 노년기에 신앙의 모험을 감행한 유일한 인물이 아브라함이다. 75세에 아버지와 고향을 떠나 모험 길에 오르고 175세에 죽기까지 100년에 걸쳐 계속 순례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소유하던 땅을 땅에 대한 약속과 맞바꾸는 모험은 철없는 ‘젊은이’나 할 짓이다. 장 루이 스카Jean-Louis Ska는 이러한 아브라함을 그리스 세계의 ‘길 떠나는 인간homo viator’의 전형인 오디세우스와 비교한다. 오디세우스가 10년에 걸친 항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반면, 아브라함은 집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돌아감이 없는 완전한 떠남’을 수행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 소명은 결국, 고향, 집으로의 귀환이 암시하듯, 진정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 자기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느님이라는 절대타자, 곧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야만 했다. 자신에게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되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그렇게 젊음을 유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Christus vivit(2019.4.2.)”라는 문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리스도를 오디세우스와 오르페우스를 상대로 비교하며, 인간은 그저 생존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실존적/신학적 젊음을 간직해야 승리자로 살아있는 것이다. 고향 이타카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 중 하나인 ‘사이렌(그리스어로 ‘시레네’)’의 노랫소리에 홀려 난파될 위험에 처한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동료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을 돛대에 매단 채 홀로 사이렌 노랫소리를 듣는다.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몸을 돛대에 묶었기에 무사히 해협을 통과해 살아남는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하면, 이렇게 살아남은 오디세우스를 능가하여 그리스도의 전형이 되는 인물은 오르페우스이다. ‘사이렌’의 소리를 감내할 것만 아니라, 오르페우스가 하데스를 압도하는 노래를 불렀듯, 그것을 압도하여 능가할 ‘새로운 노래(묵시 14,3)’를 부를 때라야 진정한 승리에 대해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노래는 “시온산 위에 어린양과 함께 서 있는 십사만 사천 명”(14,1)이 부르는 것이다. 진정한 승리자로 살아있는 자들의 노래이다. 새 노래(그리스어로 ‘오데 카이네’)라는 표현에서 새롭다는 의미의 ‘카이네’는 없던 새로움이 아니라 이미 있었지만 감추어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새로움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새 노래를 부르는 복음 내 대표적 인물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를 꼽는다. 사랑받는 제자는 주님의 무덤에 먼저 도달했지만 뒤늦게 도착한 베드로에게 더 멀리 갈 수 있게 ‘새 노래’를 들려주고 그렇게 사라진다(요한 20,8 참조). 베드로가 젊은 후세대를 의미한다면, 사랑받는 제자는 먼저 왔지만, 여전히 젊은 이전 세대를 가리킨다.


먼저 와 횃불을 손에 들고서 ‘새 노래’는커녕 ‘라때는 말이야’를 연신 반복한다면 젊음과는 무관한, 아니 젊음에 방해되는 그저 숨만 붙어있는 고집스러운 늙은이일 뿐이다. 더 늦게 온 다음 세대가 자기들보다 더 낫기를 희망하며 여태껏 자기 삶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새로운 것들을 노래로 들려주며 더 멀리 가도록 격려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계속되는 젊음에 참여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게 나는 ‘늙음 속에 젊음’을 간직하는가? 지금 어떤 ‘새 노래’를 부르는가? 아님, ‘TV조선’의 구린 ‘트로트’만 연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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