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사랑이 만나고 믿음과 믿음이 만나다!
‘애가 탄다!’ ‘애간장이 녹는다!’ ‘애간장이 끊어질 듯하다!’
저의 부모님이 가끔 사용하시던 이 표현의 의미를 저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데, 여러분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시거나 들어보셨는지요?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보유한 주식의 주가가 급락할 때? 취업하지 못하고 빈둥거리는 자녀를 바라볼 때? 아니면 사랑하는 이를 멀리 떠나보내야 할 때나 자녀든 부모님이든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지켜보게 될 때입니까?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가나안 부인’ 역시 ‘애간장이 타고, 녹고, 끊어지는’ 심정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갔을 것입니다. 호되게 마귀 들린 딸을 품어 안고 돌보아야 할 엄마의 마음.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주저 않아 눈물만 흘렸을 지도 모를 그 마음. 딸을 살리고자 하는 그 모성애는 자기 자신을 예수님 앞으로 이끌었고, 딸을 살려 달라 애타게 부르짖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였으며, 엎드리거나 강아지 취급받기를 거부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린 가나안 부인의 모습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비우며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필리 2,7-8) 예수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에 앞서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라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떠난 그곳은 어떤 곳인가? 복음의 앞 대목을 살펴볼 때 그곳은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고 입술로만 하느님을 공경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하느님을 헛되이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마태 15,8-9)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이 없는 그곳’을 떠나 아예 믿음이 없는 지역인 이방인의 지역으로 물러가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느님께 대한 참 믿음이 없는 지역인 그곳에서 이번에는 어떤 여인이 주님을 만나러 나옵니다. 이 여인은 우상숭배와 불경한 삶의 방식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여인은 찾았고, 그들이 율법 안에서 거부한 분을 여인은 믿음을 통해 고백했습니다(라틴인 에피파니우스 『복음서 주해』).
주님께 대한 믿음은 결국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는 은총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은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이는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난(창세 1,3) 분의 목소리를 연상케 합니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마태오 복음 강해』).
가나안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
사랑이 사랑을 만나 큰 사랑을 경험하고, 믿음이 믿음을 만나 큰 믿음으로 성장하고 은총도 받습니다. 우리도 큰 사랑을 체험하고 큰 믿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아닌 것을 벗어버리고 믿음이 없는 곳을 떠나야 합니다. 사랑 자체이신 분을 만나야 하고 믿음에 은총으로 응답하시는 분께 의탁해야 합니다.
사랑도 크고 믿음도 큰 오늘 복음의 이 여인의 마음을 우리 마음에 초대하면 좋겠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큰 사랑으로 큰 믿음으로 성장하여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으로 물들게 하고 믿음이 없는 곳에 믿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