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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론 김형렬 요셉 신부

사랑의 시작점, 공감 능력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매년 10월의 마지막 날이면 라디오에서 한 번은 듣게 되는 노래입니다. 우리는 오늘, 10월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며 이번 주간 묵주 기도 성월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노래 가사를 떠올리다 보니) 세상을 향해 쉼 없이 외치는 성모님의 간절한 메시지를 무슨 뜻인지 헤아리지 못하고, 묵주 기도 성월과 헤어지는 건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저는 올해, 교회의 귀중한 선물인 안식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제 20년 차, 짧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여전히 모자란, 덩치만 큰 어른으로 살아왔음을 성찰하고 고백하며 지냅니다.


안식년 동안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 책자에 수록된 167곳의 순례지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평신도가 이 길을 완주하고 축복장을 받는 걸 알게 되면서 사제인 저도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한 달 전, 100번째 순례지 방문 후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완주한 선배들이 얼마나 대단한 수고와 체험을 했을지 존경스러울 만큼 쉽지 않은 여정입니다. 혼자 지내다 보니 순례 중에 ‘나 홀로 미사’를 드리지만, 그래도 주일이면 그날 머무는 곳의 가까운 성당을 찾아 신자석에서 ‘함께하는 미사’의 소중함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미난 경험도 합니다. 어느 본당의 수녀님은 저를 성가대에 데려가고 싶어 했고, 어느 본당의 자매님은 성경 공부반에 들어오라 권유했고, 어느 본당의 신부님은 미사 후에 먼저 나와 인사를 하면서 ‘혹시 우리 쪽 사람 아니냐?’며 미사 중에 제가 이쪽 사람인 걸 감으로 눈치채셨다는 등, 사제 복장을 갖추지 않으니 여러 상황을 겪습니다.


주일헌금도 매주 봉헌하는데, 제단에서 공지할 때는 몰랐던 2차 헌금이 왜 그리 자주 돌아오는지 가끔 헌금의 액수를 줄일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어느 날은 성당과 거리가 멀어 여유 있게 출발했는데도, 길을 헤매거나 주차할 공간을 찾지 못해 미사에 늦어 신부님에게 꾸중 듣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으로 미사에 참여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면으로 다 공유하지 못하지만, 신자들의 불편한 마음과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조금이나마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제가 그동안 제단 위에서, 그리고 본당 신부로서 우리 신자와의 공감 능력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사랑은 주님의 공감 능력에서 시작됨을 배웁니다. 주님께서는 이방인, 과부, 고아, 가난한 이를 포함한 모두의 상황을 공감했기에 그들을 지키고 사랑해달라고 계명으로 남깁니다. 이는 누군가가 당신 자녀에게 상처 주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계명을 배우고 가르친 제가, 지금까지 하느님이 맡기신 어린 양들을 제단 위에서만 내려다봤으니, 요즘 제단 아래에서 깨우친 계명의 시작점(평신도와 공감)을 놓쳤던 겁니다. 제단 아래로 내려가 눈높이에 맞춰 형제자매를 깊이 들여다봐야 공감할 수 있고, 그제야 제대로 사랑하게 됨을 매주 신자석에서 배웁니다.


여러분도 서늘해질 차가운 공기 속에 이웃들과 공감하며 따뜻한 가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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