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려진 밥상
가끔씩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주로 혼자서 밥을 해 먹거나 알아서 차려 먹다 보니 누군가가 차려준 밥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음식을 마련할 때 얼마나 수고스럽고 시간이 들어가는지 알게 됩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밥을 마련해 준다는 것은 굉장히 고마운 일임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집에서 밥을 먹든 식당에서 돈을 주고 사서 먹든 간에 누군가가 나를 위해 먹을 것을 해주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님을 생각해 봅니다.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제자들이 묻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이 마련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시에는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할 파스카 음식을 차렸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제자들이 차리지 않아도 될 파스카 음식을 주님께서 차려주십니다. 광야에서 ‘만나’가 그랬듯 주님께서 차려주시는 음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열심히 한다고 누구는 더 주고 누구는 덜 주고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먹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먹고 마시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서 차려주시는 밥상을 마주하며 부모님의 사랑의 신비를 조금씩 알아가듯이, 주님께서 차려주시는 밥상을 자주 마주해야만 성체성사의 신비를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차려주신 밥상에 대한 감사와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면 최소한 손이라도 씻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고해성사 그리고 적어도 미사 시작하면서 바치는 참회 예식이 그러한 노력입니다. 차려진 밥상인 제대 둘레에 모여 제대로 식사를 하도록 합시다. 다음은 성체 성혈의 신비에 대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지만, 이보다 더 이상 주실 수 없으십니다. 지극히 지혜로우시지만, 더 이상 무엇을 주실 수 있는지 알지 못하십니다. 무한히 부유하시지만, 더 이상 주실 것이 없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