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1.11.18 13:41

We are the champion(우리는 승리자)

조회 수 113
Extra Form
저자 김현주 스텔라 수필가

버킷 리스트의 ‘사회복지학 공부하기’를 실천하게 되어서 3월부터 만학도가 되었다. 다시 누리고 싶던 캠퍼스의 낭만은 코로나19의 상황에 따라 온라인수업을 듣고 제출해야 할 산더미 같은 과제물과 함께 사라졌다. 


<다문화가족의 위험요인들을 분석하고 당신의 역할을 서술하시오>란 과제를 받자마자 H가 떠올랐다. 농촌지역에서도 어려운 가정형편, 할아버지처럼 나이 많은 아버지, 사진만 남기고 떠난 엄마. H는 경제적 빈곤, 가족갈등 및 가족해체, 사회·문화적 적응의 어려움 등 우리가 꼽는 위험요인들을 모두 가진 다문화학생이었다. 이름을 두고도 ‘동남아’라고 부르며 차별하는 시선들로 해서 늘 혼자 다니고, 혼자 밥 먹고, 말을 붙여도 대답 없이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돌아보니 H의 목소리를 들어 본 기억이 없다. 다문화가정의 학생들이 가정, 언어, 소통교육의 삼중고를 겪어내느라 학업중단 비율이 일반학생의 3배라는 수치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H도 곧 학교를 그만두었다. 부모가 유럽 사람이면 글로벌이고 동남아 사람이면 다문화라는 식의 차별을 받고 결국은 아웃사이더로 밀려나는가 싶었다. 일본인 어머니를 둔 학생은 제2외국어를 잘하겠다고 또래들이 부러워하고 인기도 많았는데 H에겐 어머니의 나라가 어디인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텐데, 결국은 나도 H에게 방관자로 남고 말았다. 다문화라고 선을 긋는 우리가 오히려 위험요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아이들이 쓰는 크레파스와 물감에 ‘살색’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그런 표현을 쓰는 것부터 차별이어서 ‘연주황색’이라고 표현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단일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혈통주의 교육을 받았지만 지금은 혼혈, 국제결혼, 다문화라는 말을 새삼스럽지 않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 미국의 제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케냐 출신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 출신이고 미식축구 선수로 유명한 하인스 워드도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달라서 틀렸다고 생각하면 도전하고 더 넓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전쟁과 폭정을 피해서 온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진천에 들어왔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이렇게 나라 이름에 붙은 ‘스탄’은 ‘살기 좋은 땅’ ‘자유의 땅’을 뜻하는 접미사라고 한다. 북한이탈주민, 아프가니스탄 피란민, 이주노동자, 그리고 많은 H들이 여기에서, 한국-스탄(한국-살기 좋은 땅)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세계시민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도전은 낯설고 다르다고 배척하지 않고 우리가 자랑하는 비빔밥처럼, 우리와 함께 어울리도록 인정해 주는 것이다. 보헤미안 퀸의 노래, 인생이라는 도전에서 우리 모두 함께 지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면 이 세상의 승리자이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승리자이다. 그들의 눈물이 상처로 남지 않고 진주가 되어서 이 한국-스탄에서 빛이 났으면 한다.

 

211121 영혼의뜨락(홈피용).jpg


  1. 씨동무 못자리에서

    Date2021.12.27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68 file
    Read More
  2. 신앙의 유랑민-황순원의 『움직이는 성』

    Date2021.12.15 Category문학과 신앙 Views286 file
    Read More
  3. 살아서 이룬 것 중 마지막 남는 것은

    Date2021.12.15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40 file
    Read More
  4. 방주에 탄 선량한 노아의 가족처럼 진동성당

    Date2021.12.09 Category본당순례 Views740 file
    Read More
  5. 옳은 것을 강요하는 바리사이처럼

    Date2021.12.02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63 file
    Read More
  6. 천주님은 크신 분-최은영의 『밝은 밤』

    Date2021.11.18 Category문학과 신앙 Views166 file
    Read More
  7. 빛의 열매

    Date2021.11.18 Category신학칼럼 Views160 file
    Read More
  8. We are the champion(우리는 승리자)

    Date2021.11.18 Category영혼의 뜨락 Views113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38 Next
/ 3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