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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론 양태현 그레고리오 신부

진정한 가톨릭교회의 위상과 숙제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38년 전 1984년, 103위 한국 순교 성인 성녀의 탄생은 참으로 기쁘고 가슴 벅찬 은총이었습니다. 한국 순교 성인 성녀들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 갔고 다양한 순교 역사 연구와 함께 그분들의 신앙과 삶의 모범이 강조되었습니다. 많은 성당들과 영세자들이 103위 성인 성녀들의 이름을 주보로 삼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에 그분들의 벽화가 그려지고 성화(聖畵)가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명실상부 순교자들의 후예요 수많은 성인 성녀를 둔 자랑스러운 한국 천주교인들이었고 동시에 한국 순교 성인 성녀들의 높은 기개와 탁월한 신앙적인 모범을 온 세상 만방에 알리고 한국천주교회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외방 선교회 선교사 신부님들이 파푸아 뉴기니에 파견되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주보성인으로 하는 성당을 세우고 그곳 원주민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한국 순교 성인 성녀들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삼았다는 소식이 가톨릭 신문을 통해서 전해지기도 했고, 모두들 한국천주교회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제가 선교 사제로 사목을 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에콰도르(Ecuador)에서도 그랬습니다. 한국과 에콰도르, 양국 교구의 합의하에 성 안드레아 김대건(San Andrés Kim)이라는 성당을 봉헌하고 제일 눈에 띄는 자리에 갓을 쓰고 도포 자락 휘날리는 김대건 신부님의 성상(聖像)을 세웠습니다. 전혀 다른 조상의 뿌리, 이질적인 문화, 완전히 상반된 신앙의 역사를 넘어서 이제 남미(南美) 땅에도 한국 순교 성인 성녀들의 순교 정신이 심어졌다며 좋아했습니다. 에콰도르 원주민 성당의 주보성인이 한국 성인이라는 사실이 큰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에게 한국 전통 복장의 주보성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모습이 아무래도 이해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설명하기에 바빴습니다. 게다가 “당신 나라의 성인”이라는 말을 수시로 듣게 되면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전 세계 모든 가톨릭교회 안에서 같은 마음으로 공경 받으셔야 할 성인이신데 말입니다. 그럼 베드로, 바오로, 데레사는 남미 토종 에콰도르 성인 성녀란 말인가?


남미 원주민들은 스페인 식민지 과정에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하고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피를 흘린 아픔의 민족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신앙 때문에 피를 흘리고 죽어간 이들의 용맹한 신앙 정신과 삶의 모범을 강조하는 것이 얼마나 큰 모순인가 하는 갈등을 겪었습니다. 이 땅의 문화와 신앙의 역사, 민족성을 존중하고 신중하게 배려하지 않은 사실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얼마 전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캐나다 사목 방문을 <참회 순례>라 칭하면서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과거 가톨릭교회가 범했던 과오에 대한 용서를 청하는 모습은 너무나 필요한 우리 교회의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천주교회 신자들은 용맹한 신앙정신을 지켜낸 수많은 순교 성인 성녀들, 무명 순교자들의 후손들입니다. 이는 우리가 잘 지켜나가고 보존해야 할 소중한 자산입니다. 무엇보다도 진정한 한국천주교회의 위상은 수많은 순교자와 성인 성녀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기보다는, 순교자들의 후예답게 하느님과 세상을 위해 더욱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에 있음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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