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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론 윤행도 가롤로 신부

당달봉사

 

“겉으로는 멀쩡하게 눈을 뜨고 있지만 실제로는 앞을 볼 수 없는 눈.”
오늘 복음에는 태생 소경, 즉 태어나면서부터 시력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눈이 보이지 않으면 신체기관의 약 80%가 마비된 것과 같다고 하니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상영되었던 ‘올빼미’라는 영화에도 시력장애를 가진 침술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영화에서 보듯이 시력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눈을 대신할 다른 기능, 특히 청력이나 촉각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매우 예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는 대신 듣고 만지는 것으로 사물이나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합니다. 


태생 소경은 세상의 어떤 것도, 심지어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의 얼굴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많은 경우, 아니 거의 대부분 내 안에 계시고 다른 사람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당달봉사인 셈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청력이나 촉각 등 다른 기능으로라도 하느님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해 본당 재건축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형제님 한 분과 의견이 맞지 않아 언성을 높여가며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그분이 제시한 의견에 합당한 설명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분 입장에서는 많이 불편하셨던지 그 후로 주일미사에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모른 체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말쯤 어느 모임에 나갔다가 그분을 잘 아는 다른 분으로부터 전화라도 한 통해서 마음을 좀 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유야 어찌 되었건 그분이 미사에 나오지 않는 것은 저 때문이었습니다. 제 감정으로 인해 눈으로 보이는 형제님의 모습만 보고 그분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 뵙지 못한 것이지요. 


당달봉사처럼 눈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다른 분이 말씀하신 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청력은 살아있었습니다.
다음날 작은 선물을 준비해 그분 사무실로 찾아가서 저의 미성숙으로 인해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린 것에 진심으로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분도 사무실까지 찾아오게 해서 정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며칠 뒤 성탄미사에 자매님과 함께 나오셨는데 저에게는 둘도 없는 성탄 선물이었습니다. 
시력장애를 가진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멀쩡한 두 눈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눈으로 하느님을 뵐 수는 없습니다. 


사순 시기 동안 행하는 기도와 단식 그리고 자선이 우리의 영을 맑게 하여 육신의 눈으로 뵐 수 없는 하느님을 영적 청력과 촉각으로라도 듣고 느낄 수 있게 이끌어 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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