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어느덧 9월 순교자 성월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땅의 우리 신앙 선조들께서 보여주신 그 열렬한 믿음과 삶을 다시금 되새깁시다.
추석 명절을 앞둔 이때,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날 기쁨에 설레는 때이기도 합니다. 명절을 맞이하면서 우리 주위의 외국인 노동자들, 이주민들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오늘 우리 교회는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기념합니다. 이제는 공장과 일터, 길거리에서 그리고 농촌과 어촌에서도 외국인들을 마주치는 일은 전혀 낯설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결혼 이민을 오신 분들도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외국인들이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고 있습니다만 그분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조금은 의심스럽고 냉랭해 보입니다. 외국인들도 우리와 꼭 같은 한 사람의 소중한 인격체로 바라보고 대할 수는 없는가요? 그들이 우리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보지 않고 우리와 조금은 다르지만 동등한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할 소중한 존재로 여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자신은 과연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는, 이른바 토박이 혹은 본토민입니까? 죽을 때까지 고향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자라고, 공부하고, 일하고, 마침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신앙의 모범으로 삼는 많은 분들이 이주의 역사에서 생겨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 부르심을 받고 고향과 부모를 떠나갔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갔으며, 모세와 이스라엘이 파라오 폭정을 피해 가나안으로 떠났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또한 헤로데의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배려는 우리 신앙인에게 온정으로 베푸는 호의라기보다 오히려 우리 신앙이 탄생한 자리가 그곳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탈출 22,20) … “너희가 그들을 억눌러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그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다.”(22) 이스라엘은 ‘약자 보호법’이라 불리는 율법의 이 말씀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비록 국적, 민족, 종교, 문화 그리고 경제적 수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왔다는 사실로 차별하지 않고 그분들을 포용하고 배려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