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2.02.10 11:32

평화가 우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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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고굉주 에스더 소설가

주일 저녁미사에 서둘러 걸어갑니다. 추위가 매서운 날이면 길목마다 얼어있는 곳을 신경 곤두세워 비껴가야 하고, 하느님께 가는 길에 미소 지어보기도 하지만 얼어붙은 날씨만큼이나 마음 온도를 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름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성당에서 하느님과 만나고 몸도 슬슬 풀리는 것을 느끼며 그 편안함에 잠마저 솔솔 옵니다. 바깥에서 너무 찬 공기를 오래 접했던 탓이라며 날씨 탓을 해봅니다. 잔잔한 신부님의 강론은 정말 졸음을 이기기 힘들 정도로 자장가 같습니다. 그러다 들려오는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는 신부님의 음성에 정신이 번쩍 납니다. 아, 미사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 정말 기쁩니다. 순간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미사에 오롯이 참여하지 않은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거룩한 미사’를 떠올리면서 한심한 자신을 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신부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가 제일 좋습니다. 


살아 돌아오신 예수님의 목소리로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를 들었던 제자들은 얼마나 안심되고 행복했을까요? 지금 우리는 참 힘든 시기를 겪어내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예수님의 제자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요. 집에서 열심히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고 행복한 마음을 가득 지니며 웃다가도 외출 준비를 하면서 얼굴은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합니다. 마스크를 얼굴에 쓰는 순간 굳어진 얼굴도 반만 보입니다. 눈동자에 불안감을 가득 실은 채 엘리베이터에 오릅니다. 내려가는 동안 멈추는 층이 생기면 더 긴장하여 엘리베이터 구석에 붙어 섭니다. 마스크 너머 두려운 눈초리로 고개 인사만 서로 나눕니다. 


불안, 지금은 서로를 불신하는 것을 넘어 불안의 세계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 초기에는 ‘침만 튀기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입을 열기가 무섭습니다. 성당에서도 하느님을 경외하며 바치는 사람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금지되어있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 입의 역할을 금지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람과 함께 있으면 평화를 바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코로나19보다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인 이기주의”겠지요.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코로나에 걸려 남에게 옮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모두 지쳐 남 탓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손을 씻고 거리를 두며 백신을 맞기도 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탓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더니 머릿속을 덮어버렸습니다. 불안에 잠식당해 이기주의에 물들어 버린 나를 모르게 된 것입니다. 이 이기주의 때문에 또 죄책감이 듭니다. 오늘도 하루의 반성을 더해서 항상 주님의 “평화가 우리와 함께”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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