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2.01.06 11:42

성지의 기상氣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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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배의순 요한 보스코 시인

세상을 그저 그만하게 살았는데, 뭐가 그리 아쉬움이 남겠는가. 그러나 아니다.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야 된다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가 아닌가. 내가 위암 선고를 받고, 수술 후, 5개월쯤 지났을까, 아직 회복이 안 된 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내자內子가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이처럼 내적으로 한없이 당황하면서도,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내자를 하늘나라에 보내는 아픔을 감내해야만 했다. 


누구나 우울한 아침은 있다고 하던가. 홀아비로 산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러나 한 발 떨어져 나 자신을 끓임 없이 돌아볼 때,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무기력하게 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불안과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다가올 일에 대해 단단히 정신적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었다.


내가 안고 있는 문제를 헤아리지 말고, 내가 받고 있는 축복을 헤아려 보라는 말이 있다. 내게 신앙이 바탕이 되어 힘든 고비를 넘길 수 있었고, 이 순간 신앙생활로 인하여 잘 버틸 수 있었다. 나의 기도생활도 그렇다. 자신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조금 부족한 것을 도와달라고, 주님께 간구하는 것이, 내가 하는 기도의 근본이기도 하다. 이렇듯 끝없이 신에게 묻고 자신에게 묻는 것이 신앙이 아닌가. 베네딕도 수도원 원장을 역임한 안젤름 그륀 신부는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 하루가 즐겁고 새롭다. 그리움이 있는 곳에 진정한 삶이 있다. 따라서 당신은 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고 역설하고 있다. 진정으로 가슴에 새기고 싶은 말씀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수원교구 미리내실버타운이다. 미리내성지 들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쌍룡산이 고즈넉이 둘러싸고 있어, 가슴에 내면의 울림이 스스로 느껴지는 최고의 성지가 아닌가. 나는 매일 한 시간쯤 산책을 한다. 산책하다 보면 계절마다 다르게 눈에 보이는 것이 있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게 된다. 산책을 한다는 것은 언어 논리적 체계가 아닌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거나 창의적 사고를 유도하기도 한다. 인간의 깊은 감정은 대게 침묵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라 본다. 이처럼 다시 나를 몇 번이고 돌아보게 된 것이다. 


끝으로 필자가 평소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 두 가지를 다시 정리해 본다. 첫째, 내게는 번듯한 스펙이라고는 없다고 솔직히 고백하리라. 남 앞에 내세울 만한 때깔 좋은 무엇이 없다는 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그리하여 매일 출근 도장을 찍듯 하면서, 책을 읽었다. 되돌아보면, 치욕적인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었다면, 오직 하느님의 은총이라 단정하고 싶다. 둘째, 내자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이곳에서 1년을 넘게 살았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경상도에서 미리내로 옮겨, 새 둥지를 제대로 튼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정신적 육체적 안정을 되찾고, 다시 수술자국이 아물고, 새 살이 돋아나듯, 감히 성지에서 받은 기상을 굳게 믿고 싶다. 참으로 신에게 감사하며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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