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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 엘리사벳 교수/경남대

가롯 유다는 은 삼십 세겔을 받고 예수를 팔아넘겼다. 이후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박상륭의 『아겔다마』는 예수의 죽음 후 그가 집에 돌아와 죽기까지의 시간을 다룬 짧은 작품이다. 종교적 소설이기도 하지만 읽는 이에 따라 해석도 다양할 수 있다.


아겔다마는 ‘피밭’이라는 뜻이다. 시체 태우는 연기가 가득한 이 피의 땅에서 유다는 어떻게 살고 고뇌하고 죽었을까. 그저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그’를 통해 ‘우리’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유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이다. 예정된 것이었다고 해도 밀고와 예수의 죽음은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예수가 죽은 후 집에 돌아온 유다는 광기에 빠진 듯 자신을 친자식처럼 돌보아주던 노파를 잔인하게 겁탈한다. 골고다 언덕에서 막달라 마리아(따스하고 물큰하면서도 범할 수 없는 고요함을 지닌)에게 느끼던 욕정 때문이다.


유다는 ‘지상적’인 인물로서 푸른 눈의 예수에게 위로를 얻으면서도 현실적인 혁명가 바라바에게 더 끌리기도 한다. 오른쪽 눈과 달리 왼쪽 눈은 위를 쳐다보는 듯한 사시로서 그는 현실과 초월의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이며, 그러면서 욕정에 굴복하듯이 지상의 현실에 치우쳐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신이 지향하는 구원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눈앞에는 하늘보다도 넓게 보이는 두 개의 파란 눈이 유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웃음도 없고 다정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미워하는 눈도 아닌,-의미가 바래버리고 빛이 없는 눈이었다. 그 눈 속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포도주 담그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 방울의 즙도 짜낼 수 없는 듯했다. 그 눈 속엔 무無가 있었고, 휴지休止가 있었고, 그리고 그것은 불멸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다는 그런 눈을 원하진 않았다. 증오든, 사랑이든, 그 어느 쪽의 의미를 담은 눈을 원했다. 유다로서는 그 눈을 견딜 수가 없었다. 유다는 다시 한 번 패배했다.


그는 예수에게 끝없이 항변한다. 이미 나는 당신을 팔아넘긴 죄에 빠졌는데 “무엇을 나에게서 더 원하십니까”라고 따지고 또 따진다. 그때마다 예수의 답은 한 가지이다. 서른 세겔의 은은 당신의 것이니까 받아 가야 한다고.


이것은 십자가를 짊어지듯 대신 죄를 짊어지는 구원이다. 이렇게 혼몽 속에서 예수에게 대들고, 원망하고, 울고, 항변하던 유다는 마침내 지상을 떠나 구원의 세계로 넘어간다. “랍비여, 진정으로 원하신다면, 삼십 세겔의 은을 거두어 주십쇼.”라고 말하면서……. 


참으로 견디기 힘든 지옥이었어. 그래도 나는 회피하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단념도 하지 않았어…… 나는 이제 비방을 받아도 좋고 욕지거리를 받아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나의 지옥도 끝이 났을 거야. 나는 지금 물밀 듯한 행복 속에 누워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을 읽는 법은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유다의 단죄 이야기일 수도, 한없이 자애로운 예수의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다. 또는 우리 삶의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음에도 아겔다마는 있다. 나약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마음속의 ‘예수’와 끝없이 논쟁하고 울고 매달리며 고뇌한다면, 그렇게 구원과 승리의 길을 찾고자 애쓴다면 그 자체로서 고귀한 행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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