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2.03.10 11:16

춤추며 주님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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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연희 크리스티나 시인

필리핀 여행 때였다. 마닐라 근교의 꽤 큰 식당에서 일행들과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악사도 서너 명 정도 있었고 식사를 마칠 무렵 식당도 파장이었는데 느닷없이 크리스마스 캐럴이 연주되었다. 모두 의아하여 아니 이게 뭐야, 이 더운 나라에서 9월에 웬 캐럴? 했다. 가이드 말이 이 나라 사람들을 영어 스펠링이 ber로 끝나는 달이 시작되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캐럴을 부르며 축제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을의 크리스마스! 구세주의 탄생을 이렇게 수개월 전부터 고대하며 맞이할 준비를 하는 민족이 필리핀 말고 또 있나 싶었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방문한 몇 군데의 성당에서도 마찬가지로 미사가 봉헌되는 내내, 마치 잔칫집을 방문한 표정들이며 즐기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우리는 미사는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이기에 최대한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봉헌되어야 하는 것으로 배우고 실천해 왔다. 그래서 신부님의 멋진 강론에도 힘찬 박수도 못 보내고 가슴속에 꾹, 꾹 눌리곤 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미사는 축제다. 어쩌면 우리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평화의 인사 때면 소란스럽게 돌아다니며 서로 악수하고 껴안질 않나 퇴장 성가가 불릴 때면 제단 앞으로 나와서 손뼉을 치고 몸을 흔들질 않나 좀 가벼운 듯하였지만, 그들 모두의 표정들은 정말 밝고 즐거우며 진정 하느님을 만난 경쾌한 기쁨의 표시가 온몸에 드러난다. 매사 “기쁨으로 하느님을 섬겨드려라”(시편 100,2) 말씀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교민들을 위하여 많은 신부님이 해외로 파견되어 사목하신 지가 꽤 오래되었다. 또한, 외국 신부님들도 이 땅에 오셔서 자국민들을 돌보고 있으며 우리나라 신부님들도 많이 참여하고 계신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만남의 축제가 코로나라는 역병으로 수개월 동안 중단되었다가 연결되기를 몇 차례 반복하면서 주일이면 어김없이 미사 참례한 것이 얼마나 큰 고마움이었는가를 깨닫는 요즘이다. 고향을 멀리 떠나 타국에서의 삶이기에 그러잖아도 힘든데 만남 자체가 단절되고 하느님 뵙는 일도 쉽지 않으니 그것이 더 큰 고통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땅에 머물면서 경제적 안정을 바탕으로 행복을 영위하면 좋으련만 그 과정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으로 고통을 받으니 가슴이 쓰리고 아프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믿는 자의 눈에 보이는 길만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하느님의 길. 영적으로 다가가는 그 마음의 길은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아나기만 한다는 것을. 세상의 일 무엇 하나 주님의 섭리가 아닌 것이 없으니까. 감사를 반석 삼아 믿음으로 오로지 의지할 곳 주님뿐이니까. 


매 주일 15시 창원성산종합복지관 1층 강당. 나는 되도록 그들의 미사에 참여하려고 애를 쓴다. 함께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동화되어 축제의 일원이 되어서 큰 은총 받는 것 같아서 더 좋기 때문이다. 도움을 주려고 시작한 일에 오히려 도움을 받을 때가 많으니 이 또한 하느님의 큰 역사하심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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