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3.02.23 09:57

그들은 우리들의 파랑새였다

조회 수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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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용철 스테파노 시인

가희, 민영, 민지, 은경, 주환, 미현, 수정, 경엽, 단이, 도은, 동규, 미정, 미주, 보미, 산하, 선영, 세리…


파랑새의 이름들은 꽃처럼 별처럼 예쁩니다. 불러도 불러도 예쁘고 들어도 들어도 아름답고 아까운 이름들입니다. 누군가가 고심해서 지어준 이름이고 누군가의 가슴에서 꺼내어준 이름들입니다. 앞선 세대의 한스럽고, 가난을 떨쳐내기 위하여 지은 이름이 아니라 그냥 예쁘고 곱고 희망찬 우리 미래를 짊어질 새 세상의 이름들입니다.


희망차고 밝고 고운 이름들… 슬기, 예은, 유나, 의진… 
다시는 적지도 부르지도 말라는 이름들… 정훈, 주환, 지현… 


우리들의 파랑새는 그렇게 지워져 갔습니다. 왜 지워져야 하는지, 왜 울 수도 없었는지도 모른 채 기성인의 잘못된 판단과 서투른 과오들로 인해 함께 묻혔습니다. 이유 없이 짓밟히는 풀잎처럼 다시는 필 수 없는 꽃이 되어 먼 세상의 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의 문화를 갈망하고 어떤 선택된 종교에 매료되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곳에는 젊음이 있고 웃음이 있고 우리들이 있어 좋았습니다. 그래서 재잘거리고 그래서 만나고 싶고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새들은 모여서 노래하듯이 말입니다.


아이는 서랍 속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용돈을 꺼내어 세어 보면서 말합니다. “엄마! 나, 친구들이랑 서울 구경 한번 갔다 올게”라며 오만 원만 보태어 달라고 애교부리며 졸랐던 아이들은 그렇게 기성세대가 파 놓은 서투른 안전 대책과 미련한 판단을 믿었다가 이유 없는 죽음이 되어야 했습니다. 숨 막혀 퍼덕이다가…


묵상하며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다 나열하지 못한 아름다운 이름들과 사고의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는 분들과 그 가족 모두에게도 사죄의 깊은 마음으로 위로와 평화를 올립니다.


지난해 10월 29일은 155명의 파랑새가 이태원 골목길에서 짓눌린 가슴을 부여잡고 그렇게 도와 달라고 날 기다리는 엄마, 아빠께 돌아가야 한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끝내 울음을 토해내지 못했습니다. 전파를 타고 온 사고의 소식에 아연실색하며, 제발 만우절 거짓말 같은 것이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 가을의 참사는 무서운 사실이었습니다.


참회의 사순절을 맞으며 다시 머리를 조아립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우리들의 파랑새는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가슴에조차 묻지 못하고 여전히 아픔과 냉기를 붙들고 통곡합니다. 저는 나약한 인간이라서, 무얼 어쩌지 못해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주님,
모든 사람들이 참회하게 하소서. 
당신의 뜻을 깨달아 평화를 노래하는 세상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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