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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황광지 가타리나 수필가

230319 3월 문학과신앙책표지(홈피용).jpg

 

오래전에 쓴 나의 수필 <묵주 이야기> 한 부분이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아쉬워서 남겨두었던 남편의 양복 한 벌을 세상 떠난 지가 4년이나 되었으니 이제 버려야겠다며 옷장에서 꺼내었다. 혹시 돈이나 있나 하고 양복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돈이 아니라 1단짜리 묵주가 나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생전에 묵주를 만지는 일이 없었다. 물론 묵주기도도 할 줄 몰랐다. 그런데 묵주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다는 말인가. 놀랍고 기특하고 가슴이 뭉클했다. 성인들이 작게 새겨진 분홍 알 묵주를 남편 알리피오를 만난 듯이 꼭 쥐어보았다. 기도방법을 모르는 그였지만 이 묵주를 누구한테서 받아 만지며 위안을 받았구나, 성모님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의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리려던 양복을 다시 옷장에 갖다 걸었다. 성모님에게 안겨 있을 알리피오가 편안하게 그려졌다.”


지금까지 나는 개인 수필집을 여러 권 출판했다. 대부분은 지역에서 신자가 운영하는 불휘미디어에서 출판했는데, 단 한 권은 운 좋게도 가톨릭출판사와의 계약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삼십대부터 성경공부를 하면서 일생에 묵상집 한 권을 내겠다는 소망이 있었다. 하지만, 묵상집은 쉽게 엄두를 낼 일이 아니어서 신앙수필집으로 바꾸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싶다』가 그 책이며, 그 속에 수필 <묵주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 수필을 쓰면서 ‘내일, 내일 하면서 미루기만 하던’ 남편의 신앙을 폄하했던 시간을 나는 반성했다. 내가 무엇이기에 ‘그는 낙제’라고 판단했던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의 점수는 주님께서 매기시는 게 아닌가. 어느 누구도 주님께 외면당할 영혼은 없는 것이 아닌가.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며 신앙이 영글어가도록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는 아름다운 묵주기도가 있어 나는 겸손을 배운다. 잃었던 아드님을 성전에서 찾고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신 어머니의 겸손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아드님의 시신을 내려 원망 없이 안으신 어머니의 겸손을, 하늘에 불러올려 천상 모후의 관을 겸허히 받으신 어머니의 겸손을 배운다.” 


수필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활을 까발리게 되는 낯부끄러움이 늘 따르게 된다. 자기성찰의 시간도 자랑도 체험에서 소재를 가져와야 한다. 거짓이 아니어야 하고 진솔이 생명이므로, 시나 소설과는 달리 ‘팩트’를 말하다 보면 삶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또한 이 그대로를 그대로만 쓰면 문학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수필로 형상화해야 하는 고뇌가 있다.


2013년에 출판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싶다』에는 50여 편의 신앙수필이 실려 있다. 여러 이웃에게서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고 쓴 글이 있다. 나도 그리스도의 울타리 속에서 잃은 양이 되지 않으려고 조금씩 향기를 뿜는 노력으로 쓴 글이 있다. 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겠다고 하신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쓴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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