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3.03.30 09:47

사랑하고 보고 싶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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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여운숙 마리아 시인

죽은 듯이 보이던 나뭇가지에서 생명을 알리는 소리가 보이고, 연분홍 진달래가 숲을 이루는 터널을 지나 정상에 오르니 봄바다의 출렁거림이 보여요. 엄마와 함께 올랐던 날들. 팝콘처럼 황홀한 벚꽃 무리를 따라가다 보니 바람의 온도도 한결 부드러워지는 계절 앞에서 청푸른 바다는 젊은이 마음 같고, 갓 태어나는 아기 눈망울처럼 어찌 이리 예쁠까요.


엄마!
어느새 엄마가 저의 곁을 떠난 지도 17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엄마가 앉으셨던 성당의 그 자리가 선연하고, 성가며 연도 바치던 목소리가 곁에 들려온답니다. 엄마의 꼿꼿하고 냉철한 성향을 닮아서 자칫 냉정하고 각진 인간 같으나, 수리에 정확하고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 독립심은 장점인 것 같아요. 아버지의 부드러움과 감성적인 성향이 엄마에겐 몹시 애타게 했으며 답답하기까지 하셨을 법.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저도 그렇게 닮았더라구요. 무엇보다도 어려운 시절. 가정 형편에서도 교육열을 놓지 않으시고 딸이라고 배움을 끊지 않으셨던 단호함이 오늘날 소박하게 제 앞길을 열어가는 데 조그만 이력이 된다는 것. 신앙을 신앙이라 가르치지 않으시고 성당 옆 작은 구멍가게를 할 땐 성당에 미사가 있든 없든 늘상 그곳에서 친구들과 지냈던 추억은 오랜 보석이어서 가끔씩 마음속 진주를 캔답니다. 8·15광복절날 학교엔 안 가고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갔던 일은 지금도 눈에 선하고 학교에선 여름 방학 때의 집합이 결석으로 처리되었던 시간들.


엄마의 부지런함과 경제활동이 무척이나 저를 외롭게 했었기에, 학교를 다녀오면 텅 빈 공간이 싫어서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아야지! 하는 단순한 생각도 했답니다.


첫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엄마에게 보낸 편지에서 새벽부터 일어나서 아침도 안 먹고 출근한다고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냈더니 미숫가루를 강원도에서 거제도까지 보내주시면서 동봉한 편지의 글. 그때 엄마의 필체를 지금도 기억하고 저의 작은방 창고 편지함에 숨 쉬고 있어요.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파란 볼펜의 흩날림이 조금은 번져 있고, 모서리는 낡아 있어도 말이죠. 사실은 엄마가 몸소 보여주고 물려주신 종교, 신앙의 힘이 애기 손톱만큼 저에게도 싹이 내리고 자라고 있었음에 무척 감사함을 느껴요.


사회 결혼을 하기 전에 관면혼은 꼭 해야 한다며 이끌어 주셨던 모습이 잊히지 않았고, 그래서 작년 11월 저도 엄마처럼 그렇게 딸아이에게 권하고 행하였기에, 한 가정 내에서 엄마의 역할이란 참으로 크고 신비롭다는 생각이었어요.


엄마의 나이가 되었어도 엄마를 알지 못하고, 그때의 엄마는 참 어리고, 젊고, 활력에 찬 모습이었음을…. 엄마라는 이름은 세상에서 나를 가장 슬프게, 가장 빛나게, 가장 자랑스럽게 만들어요. 참 고마운 엄마를 존경하며 악착같이 살아내신 삶이 여자의 일생 중 가장 멋진 ‘시’라는 것을 오늘은 어쩌다가 삶의 한 모퉁이에서 엄마를 그려 봅니다.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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